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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의 위기는 학문의 위기 (펌)

LJay 2013. 8. 5. 18:55

‘잘되면 아인슈타인, 못 돼도 맥가이버.’ 

대학 1학년 때 학과 티셔츠에 넣을 문안 공모 중 하나였다. 1990년, ‘참교육 첫 세대’로 서울대 물리학과에 힘겹 게 입학한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대학 새내기였다. ‘마징가 Z’를 만들겠다던 소시적 꿈을 정말 이룰 것만 같 았다. 

‘수재들만 모이는 곳.’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화학과보다 일반화학 점수가 10점은 더 나오고, 수학과보다 미적분학 점수가 10점은 더 나오는 곳. 한때는 1등부터 7등까지 학과 입학 등수와 전국 등수가 같았다는 곳. 잊을 만하면 전국 수석도 나 오고 각종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를 석권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그래서, 우리는 정말 잘 되면 아인슈타인같 이 위대한 물리학자가 될 수 있고 영 형편없어도 맥가이버쯤은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티셔츠에 사진과 글자 를 넣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많던 미래의 아인슈타인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적어도 맥가이버는 돼서 어딘가를 휘젓고 다닐 까. 4년 내내 데모만 하던 나는 왜 물리학 박사가 되어 있고, 나보다 훨씬 뛰어났던 동기, 선후배들은 주위에 없 을까. 

최근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공계인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그 대부분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는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했는데 왜 대우가 이 모양이냐’로 요약된다.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왜 내가 고민하는 것은 저기 없을까’ ‘왜 다른 업계 종사자들 얘기처럼 들릴까’ ‘나는 이 공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물리학을 공부해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한 적도 없다. 돈이야 많으면 좋겠지만 애초에 큰돈 벌려고 시작한 물리학 공부는 아니었다. 학력고사 상위 1%의 성적으로 대학 가서 10년간 의사 공부한 결 과가 고작 월급 200만원이냐고 누군가 인터넷에 하소연할 때, 상위 0.1%의 성적으로 10년간 물리 공부를 해 온 우리는 ‘두뇌한국(BK) 21’ 사업으로 2배 이상 오른 월급 60만원이라는 ‘거액’에 손을 떨었다. 

연간 2,000억원씩 7년간 지원되는 BK 사업은 인건비가 약 70%라는데, 예전에는 연구원들 월급 주는 곳이 학술 진흥재단이나 과학재단밖에 없었으니 그나마 숨통이 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수혜 기관은 상대적으로 길거리에 나앉은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인건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연구지원비인데, 얼마 주지도 않는 연구비를 쓰려면 여간 조건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수백억 원씩 받아 먹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하면서 연구원들이 연구비 100만∼200만원 헛돈 쓴다 고 걸고 넘어진 것이 그 이유다. 

덕분에 지난 2001년에는 미국에서 열린 작은 워크숍에 초청까지 받았는데 항공료를 구할 수 없어 불참한 적도 있다. 지난 2월에는 일본 고에너지연구소 방문도 취소했다. 

<못 돼도 맥가이버는 될 줄 알았는데...> 

박사 후 연구원 4년째 접어드는 지금, BK 사업단에서 지급하는 내 급여는 연봉 1,600만원이다. 지난해보다 한 2 00만원 오른 것이다. 해마다 경신하는 계약서에 서명할 때 무척 기뻤다. 아니, 올해도 별 탈 없이 계약서에 서명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석사 학위 받고 대기업에 들어간 내 또래 직장인들의 연봉은 내 연봉의 한 세 배는 된다. 더 늦기 전에 연구하는 것 그만두고 기업에 취직하면 세 배의 돈이 생기는데, 그 유혹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 친구들도 이공계 푸대접을 얘기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들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월급의 세 배 정도 를 받고, 토;일요일에 마음껏 쉴 수 있다면 나는 오히려 대한민국 정부가 얼마나 과학자들을 배려해 주는지 아 마 자랑하고 다니지 않을까 싶다. 연구하고 논문 쓰는 사람들에게 휴일이란 그저 달력의 날짜 색깔이 빨간 날일 뿐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국내간 경쟁이라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아직 미혼이어서 좀 나은 편이다. 내 주변에는 박사 학위 받은 지 10년을 넘나드는 사람이 수두룩 하다. 교수 혹은 반도체 같이 잘 나가는 몇몇 분야에 있는 이들과 달리 우리 분야에서는 10년 정도 계약직 연구 원 생활을 하는 것이 이미 ‘평균’으로 되어 있다. 나이 마흔을 넘겨 처자식 줄줄이 매달고 2~3년마다 새로 계약 해야 하는 그 생활이 어떠할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교수 되기보다 로또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높아 보여 복권을 구입한다”는 40대 모 박사님의 모습이 몇 년 후 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늦기 전에 이 바닥을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기초과학 연구 에 정진하는 것을 천직으로 여겨 하루하루를 고맙게 살고 있다. 애초에 물리학을 공부해 돈 벌려고 했던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몇 년간 계속되는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언제 내가 정말 혼(魂)이 담긴 논문 한번 써 보나 하 는 것이다. 

내 연봉이 한 두 배쯤 오르면 나는 과연 행복할까. 구름처럼 몰려 있는 선배들과 동료들을 제치고 지금 나 혼자 교수가 되면 행복할까. 도대체 ‘이공계 위기’의 실체는 무엇이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 을까. 

“경제 발전 기여에 걸맞은 대우”를 말하는 이공계인들이여, 한번 생각해 보라. 어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갑자 기 엔지니어의 경제 발전에 대한 공로를 깨달았다고 해서 연봉 올려 줄까. 나같이 경제 발전에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이론물리학자나 남극에 가 있는 세종기지 대원들은 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가 없으니 ‘이공계’인이 아 닌가.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공대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공계생은 회사에 취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대생과 그 중의 다수인 기업체 엔지니어의 ‘처우개선’이 ‘이공계 위기’의 처음과 끝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 공대생의 위기’에 불과하다. 

이공계의 위기는 결코 공대의 위기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공대의 위기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공계의 위기는 또한 ‘이공계만의 위기’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이 문제인가. 

<이공계의 위기는 학문의 위기 완결판> 

이공계 위기와 기피 문제를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볼 수는 없을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나는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대한민국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학문의 위기를 들고 나온 중요한 계기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공계 위기의 현실이나 해결책들이 지극히 ‘경제논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공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학문과 경제를 분리해야 한다. 이 말이 학문과 경제가 아무런 상호 작용 없이 각자 따로 놀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학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 그 자체의 내적 논리, 다른 어떤 분야의 논리가 아닌 학문 그 자체의 발전 메커니즘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 학문의 존재 이유를 국가의 경제발전에서만 찾아야 하는가. 한 나라의 학문의 발전과 융성은 다른 그 무엇과 도 바꿀 수 없고,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되거나 대체될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적 발전의 맥을 도도히 이어 가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전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숭고한 뜻 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들이 한낱 돈 몇 푼의 논리에 빗대어 얘기된다면 학문은 경제의 노예밖에 더 되겠나? 

이공계인들의 푸념을 단순화하면 ‘우리가 국가 경제 발전에 크나큰 도움을 줬는데 왜 지금 우리가 이렇게 푸대 접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물리학자인 나로서도 이와 관련해 할 말은 많다. 

대한민국 대표 상품인 반도체 개발에 고체 물리학이 기여한 바는 가히 절대적이다. 인터넷을 처음 개발한 곳이 유럽 공동 입자가속기 그룹(CERN)이고, 전기를 발견해 모든 국민들에게 ‘사용료’를 내게 한 주인공도 영국의 물리학자 패러데이였다. 그러나 예컨대 전자기 유도의 발견의 가치를 지금까지 인류가 전기 사용료로 지불한 액수로만 매길 수 있을까. 

돈벌이가 지상명령인 기업체에서는 이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체를 벗어난 다른 곳(특히 대학)에서까지 이런 경제논리가 팽배해지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 당장 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이공계인들은 나가 죽으라 는 말인가. 

경제논리는 몇몇 잘 나가는 공대 출신 엔지니어들이 정부나 기업에서 좀 더 많은 돈을 얻어 내기 위한 논리일 뿐이다. 전체 이공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준을 내세워 사회적 가치판단을 내리게 하여 결 국 자기가 속한 그룹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은 집단이기주의다. 

경제논리는 당연하게 기업에서는 대환영이다. 그들은 고급 인력과, 고급 기술과, 고급 지식을 아주 값싸게 얻을 수 있다. 돈 안 되는 이공계 분야를 손 안 대고 코 풀 듯 이공계 자체의 몸값 높이기 경쟁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 정책에 의해, 그리고 전 사회적인 돈벌이 지상주의에 의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정리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 다. 

이공계의 위기가 이렇게 전면화되기 몇 년 전인 1995년께 주요 대학에서 학부제가 실시되면서 많은 대학 교수 들은 우리나라 기초 학문의 위기를 경고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5년쯤 전에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돌 았다. 뒤집어 말하자면, 지금 이공계의 위기는 1990년대에 줄기차게 거론되던 이른바 ‘학문의 위기’의 완결판 인 셈이다. 

이공계가 정말 사회에서 대접받으려면 지금처럼 경제논리 앞에서 경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와 기업에 서 ‘모셔 가도록’ 하려면 이공계 스스로의 존재 근거와 자신만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즉, 기업체들이 오히려 경 쟁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부터 이공계를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 있는 학 문으로 바라봐야 한다.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만 집중돼 있는 이상 이공계 위기에 대한 의미 있는 대책은 기대하기 힘들다. 기껏해야 이 공계생 장학금 지급이나 고위 공직자 쿼터제 등의 땜질식 정책뿐일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볼 때 학문이 융성하지 않고 한 나라나 특정 세력이 융성했던 적이 있었던가. 학문이 살아야, 학자들이 대접받아야 나라에 미래가 있다는 그 진부한 말을 나는 이공계 위기에 대한 근본 대책, 가장 확실하면서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의 물리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의 인문학이 융성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왜 그런가.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학문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는 잘 하는데 창의적 연구는 약하다고 한다. 그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인문학적 풍토의 척박함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공계의 위기도 문제이지만 인문학의 위기가 훨씬 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즘 누가 인문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려고 하는가. 교수도 태부족이고 병역 특혜도 없다. 

<인문학이 살아야 이공계도 산다> 

서울대에 가면 ‘규장각’이라는 곳이 있다. 주로 고문서를 보관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속에 어떤 문서들이 있는 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들었다. 박사급 인력 몇 명만 투입하면 값진 논문이 쏟아질 판 이라는데, 이를 못 할 정도로 고급 인력이 부족하다. 

더욱이 1년에 몇억 원이면 아주 훌륭하게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는데도 그 몇 푼 안 되는 설비비가 없어 자료들 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썩어 간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인문학 수준이 이 모 양이니 프랑스에서 이를 트집잡아 ‘외규장각 도서’를 못 돌려주겠다고 하지 않던가. 

도대체 퇴계와 율곡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연구소가 일본에 훨씬 더 많은 현실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를 얘기한 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10년도 넘게 천문학적 액수를 투입해 준비해 왔는데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겨우 고구려를 공부하니 어쩌니 난리법석이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이 땅의 인문학이 얼마나 피폐해 있는지 일일이 경우를 세기도 힘들다. 

기본이 바로 서고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그 사회의 기초 학문, 특히 인문학을 제대로 세워 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이야기하는 ‘국민들의 의식 변화’는 결국 한 사회의 인문학의 성숙도와 결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여태껏 우리 정부가 국가적 사업으로 학문을 진흥하려고 시도한 정책을 잘 알지 못한 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국가의 기틀을 잡고 태평성대를 이룬 시대에는 빠짐없이 학문 장려책이 중요 국책사업에 들어 있었다. 

이 땅에 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지 무려 반 세기가 훨씬 지났건만, 아직 제대로 된 국책 사업으로서의 학문 진흥 책은 없었다. 이것은 비극이다. 인문학이 무너진다는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학자들의 경고가 이제는 전 사회를 들썩이게 하는 이공계의 위기로 다가왔다. 한 두 해 동안에 이공계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적인 학문의 위기가 말기암 시기까지 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만큼 그 처방도 담대하고 근본적이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일까. 정말 우리나라에 돈이 없어서 이 땅의 기초 학문이 아사 직전인 것일까. 나는 무엇보다 국가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관료들의 마인드를 문제 삼고 싶다.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 13대 경제대국이다. 돈이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예컨대, 제일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고 해 하루아침에 쏟아부은 공적자금이 무려 30조원이 넘는다. IMF 이후 금융권에 이런 식으로 들어간 돈이 내가 들은 것만 200조원 가까이 되고, 그 중 60% 이상은 회수 불능이라 고 한다. 

경제논리로 따져 보자면 이렇게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논란도 많을 것이다. 그 옳고 그 름을 떠나 적어도 우리나라 재정경제부 관료들은 은행 하나가 쓰러지면 국가경제가 결단날 것이라고 판단하는 즉시 수십조 원을 동원한다. 그 돈의 원금조차 제대로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많은 돈 을 끌어 댄다. 그만큼 은행 하나의 흥망성쇠가 국가 존망과 직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마인드> 

그런데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대학이 망해 가고 중;고등학교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런 위급한 상황에 서 재경부가 언제 수십조 원을, 아니 수조 원이라도 긴급 투입한 적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학문이 망해 간다고 아우성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국가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 그게 어떻게 부실 은행 하나의 존망보다 못할 수 있다는 말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우리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재경부 나으리들은 적어도 학문의 중요성, 대학이 쓰러져 가는 상황의 심 각성, 그것이 국가의 존망에 곧바로 직결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전혀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문에 관한 마인드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디 이뿐이랴? 정부에서는 선뜻 큰돈을 들여, 아니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어 학자들과 연구소와 대학들을 위해 장기 정책을 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학문이 융성해지려면 온갖 제도와 시설과 사회 시스템이 잘 맞물려야 하 기 때문에 이 또한 사회의 중요한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인재 양성 인프라가 거의 전무 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내실 있게 구축될 전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회간접자본의 경우와는 비교도 안 된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였다는 인천국제공항을 보자. 여기에 들어간 돈이 약 5조원이다. 애초에 인천 앞바다에 바 다를 메워 거대한 허브 공항을 건설한다는 계획 자체에 반대도 많았다. 건설하는 동안에는 내내 부실공사 시비 와 경제성이 의심받았다. 인천공항은 아직 적자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중요한 국책 사업이라며 그대로 밀고 나갔다. 

성공 가능성이 100%여서가 아니었다. 신공항의 존재가 향후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사회간접자본 중 하나라 는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와, 걱정과, 우려와, 적자를 무릅쓰고 ‘강행’한 것이다. 왜 이런 과 감한 결단을 학문 인프라 구축에는 적용하지 못할까. 

어떤 사람들은 재원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또한 뜻을 먼저 세우고 방법을 찾으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 조세와 국방은 국가 정책의 근본을 이룬다. 민주노동당에서는 부유세 신설도 제기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들에게 특별세를 걷어 오로지 학문 진흥에만 지원하는 것도 매우 의미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은 법인세 1%를 주장한다. 연간 1,700억원 정도 된다. 이 정도만 해도 현재 진행중 인 BK사업과 맞먹는다. 마인드만 바꾸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다. 

또 국방비를 제대로만 써도 돈을 남길 수 있다. 우리나라 한 해 국방비는 대략 17조6,000억원 정도 된다. 그 중 60만명의 대군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데 적어도 60%가 쓰인다. 이런 곳에 들어가는 군납품은 그리 중요한 군 사기밀이 될 것도 없다.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모두를 인터넷 경매에 부치면 적어도 반값에 조달할 수 있다. 예전에 정부 모 부처에서 부처 조달품을 인터넷을 통해 경매로 구입한 결과 예전에 비해 70%의 비용을 절감한 예가 있다. 

어디 돈 나올 구멍이 여기뿐이겠는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은 헛말이 아니다.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5개년계획’ 이라는 것도 만들어 줄기차게 시행해 왔다. ‘차세대 생존전략 10대 과제’를 선정해 올해부터 당장 연간 3조원씩 들어간다. 잘하는 일이다. 이제는 학문 진흥을 위해서도 제발 장기적인 ‘국책사업’을 벌여야 한다(BK21 사업은, 우선 예산 규모 면에서 ‘국가적 사업’에 끼지 못한다). 

돈이 없다고 하기 전에 ‘마음’은 있기나 한 것인지, 학문이 망해 가는 것이 은행 문 닫는 것만큼, 휴전선 장병들 굶기는 것만큼 절박한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그것부터 먼저 자문해 보라. 인재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학문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냉정하게 얘기하면 그냥 ‘돈을 버리는’ 일이다. 우리 정부가 대지진 참사로 고통받 는 이란 정부에 구호 물자를 보내고 구호금을 1억달러쯤 보냈다고 하자. 이게 투자인가. 지금 형편 좀 좋을 때 못살고 힘든 나라 도와줘야 우리가 힘들 때 도움받을 수 있다는 보장형 보험이라도 되나? 결코 그렇지 않다. 오 히려 이런 구호금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가깝다. 한 국가가 국가로서의 최소 한의 기능과 책무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출해야만 하는 돈이다. 

학자들에게 쓰는 돈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연구하는 입자이론물리학, 이것을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당장 큰돈 을 벌지는 못한다. 기초학문 하는 사람들한테 돈 몇 푼 쥐어 주면서 “이 연구가 산업적 효용성이 있느냐”는 질문 은 제발 하지 말기 바란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내 연구 성과가 경제 발전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말 하자면 ‘베이징(北京)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 앞바다에서 해일을 일으키는’ 수준에 비견할 만할 것이다. 한 마디 로 기초학문을 살리려면 학자들한테 돈을 펑펑 쏟아서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돈을 버려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돈을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할까. 정부에서 이공계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우선 고급 인력들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미 각 대학에서는 대학원 중심 대학을 기치로 내걸고 석;박사급 인력을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 로는 이런 인력을 제대로 흡수할 스펀지가 없다. 이는 정부의 시선이 기업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갈 데 없는 석;박사 인력은 그 자체가 ‘값싼 고급 노동력’일 수밖에 없다. 

정부나 대학이 이들의 향후 진로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무작정 대학원 정원만 늘리고 BK 사업으로 대학원생들 월급 대주는 것은 종국에는 기업들만 살찌우게 되어 있다. 이공계가 사회적으로 홀대받 을 수밖에 없는 데는 이런 구조적 결함이 큰 역할을 한다.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 ‘공돌이’인데 어느 기업주가 비싼 돈 주고 엔지니어를 데려올까. 당장 대학에 가서 이공 계 대학원생들 붙잡고 물어 보라. “연구 활동에서 가장 큰 장애가 뭐냐”고. 십중팔구는 ‘불안한 미래’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석사나 박사를 마치고 나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중점적으로 해야 한다. 기업이나 산업체 중심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학위를 받고 나서 연구를 계속하든 취직해 돈을 벌든, 어쨌든 갈 곳이 많으면 이들의 몸값은 올라간다. 정부는 이공계 출신들이 학위를 받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을 많이 만들어 주면 된다. 이런 고급 인력들이 하고 싶은 일들 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학문이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기능 있는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것에 대한 지불이 후하지 않다. 이공계 기술자, 엔지니 어 등뿐만 아니라 컨설팅 회사의 자문을 받는 것에 대한 비용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도 좋은 예다. 이런 풍토는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는 데 큰 걸림돌이다(물론, 투명한 조세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당연하 다). 

독일에서는 마이스터의 손끝만 거쳐도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대체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는 사람 의 손길과 능력을 거치는 것에 매우 비싼 값을 매겨준다. 그래야 그런 전문가들이 많이 양산된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정부가 이들을 비싸게 취급해 주면 기업체가 이들을 홀대할 수 없다. 

이제 구체적인 제안을 해 보자. 정부는 무엇보다 연구소를 많이 짓고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많이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 연구소를 지어 달라고 하면 또 무슨 ‘산업적 연계’ 이런 것부터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기업, 산업, 돈벌이… 이런 것과 전혀 상관 없는, 정말 연구원들이 아무 생각 없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순수 연구 소’를 많이 지어야 한다. 정부가 이런 방향에 집중하면 특수한 산업적 목적의 연구소는 오히려 기업에서 앞다퉈 지어줄 것이다.

일본의 도쿄(東京)대나 도호쿠(東北)대 같은 곳에는 학과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부속 연구소가 딸린 경우가 많 다. 예컨대 물성과학연구소 같은 곳에는 박사급 인력이 100명 이상 모여 있다고 한다. 

이런 곳에서 박사 학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예를 들자면 금속 A와 B를 비율을 계 속 바꿔 가며 섞어 그 합금의 강도;광택;전도도 등 기본적인 성질 변화를 계속 조사해 나가는 일들이다. 이런 일 에 박사급 인력이 필요할까 혹은 그런 단순한 일을 하는데 무슨 연구소까지 지어 난리를 떨까 싶지만, 그렇게 해서 쌓인 데이터는 그 자체가 중요한 학문적 성과다. 

어디 그뿐인가. 일단 그렇게 학문적 성과가 쌓이면 어떻게든 그것으로 돈을 만들거나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일본이 미국도 부러워하는 전투기 복합 일체 성형술을 보유한 것이나, 미국 우주 왕복선에 일본에서 개발한 신소재들이 쓰이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연구 기관의 확충과 함께 대학 교수들의 양적 팽창 또한 시급하다. 국민 1인당 교수 비율을 따져 보면 아마 미국 이나 일본과 현격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물리학과의 경우 서울대;연세대 물리학과 교수진이 30명 안팎이다. 그런데 제대로 물리학을 하려면 적어도 2배 이상의 교수진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판단이다. 모든 대학의 교수진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같은 곳을 거점으 로 지정해 물리학과 교수진을 한 100명 정도까지 (단계적으로) 늘린다면, 이런 대학이 전국에 한두 곳만 있어도 한국 물리학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돈 안 되는 순수 연구소를 많이 지어라> 

교수진을 대폭 늘리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가 있다. 다른 대학들의 반발도 예상되고, 지금도 부족 한 공간 문제도 있을 것이며 특정 분야에만 특혜를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교수진의 양적 팽창을 주장하는 것은 이제는 기초 학문에서도 우리가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이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전문가의 태부족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로 인해 학계가 받는 고통은 의외로 크다. 

또 한 가지 욕심을 부린다면 대규모 연구 단지 혹은 거대 프로젝트의 유치다. 이것은 말 그대로 돈이 천문학적 으로 소요되는 일이어서 우리나라가 중심이 되고 일본;미국;중국 등을 끌어들여 해외 자본을 유치한다고 해도 국가경제의 허리가 휠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거대 프로젝트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충분히 해 낸다. 

일본의 고에너지연구소(KEK)는 상주하는 사람만 700명이 넘는다. 이 자체가 이미 ‘규모의 경제학’을 실현하는 셈이다. 특히 연구소 내부의 ‘Belle입자검출기그룹’은 최근 입자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들을 연거푸 해냄 으로써 미국과 함께 이 분야의 양대 거점으로 올라선 지 오래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로 인한 일본이라는 국가 이미지 개선은 말 그대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학자들은 중요한 결과가 나온 논문을 읽으면서 항상 ‘Belle Collaboration’이라는 연구 그룹 이름을 접하게 되고, 이로 인 해 수많은 일본 학자들의 이름과 일본 대학들과 일본 연구소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 ‘ 일본의 가속기’로 인식된다. 

전 세계의 수많은 고급 인력들이 한 달 단위로, 아니 1주일 단위로 이런 ‘국가광고’를 접한다고 생각해 보라. Bel le의 중요한 실험 결과 발표는 아사히 신문 1면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지 1면에도 실린다.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KEK 등지에서 입자물리 실험을 하지만 결국 남의 나라에 가서 하 는 실험이다 보니 제대로 된 성과가 하나도 안 남는다. 반면 일본은 이미 이 분야에서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기 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번에 새로 승인된 JPARC 계획까지, 일본 열도에는 모두 네 개의 입자가속기가 생 겨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성과가 한국에 고스란히 남는 이런 프로젝트를 벌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현재 수준은, 양양에 서 벌이고 있는 암흑물질 탐색 연구에 고작 30억원쯤 들어간 정도다. 당장 우리도 가속기를 만들자는 얘기가 아 니다. 어느 분야든 ‘국책사업’으로서의 거대 프로젝트도 이제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프로 젝트들을 통해 기초학문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대형 연구단지가 들어서면 그것이 파생하는 고용 효과는 엄청나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사무직이나 여타 제반 설비들, 인근 상권 형성 등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가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보통 사람들이나 사회의 기 초 학문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체가 매우 훌륭한 국가 이미지 광고 매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얘기한 이 모든 것들이 10년이고 20년이고 잘 굴러가게 하려면 각각의 요소들이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을 이루면서 안정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구조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모든 분야에 이 ‘시스템’이 없다. 정부나 언론이나 사회 모두 각 분야의 훌륭한 인재들을 ‘어 떻게 길러낼 것인가’보다 ‘언제 태어날까’에만 관심이 있다. 그렇게 어쩌다 우연히 등장한 ‘스타’를 대개 ‘한국인 의 우수함’이나 ‘개인 능력의 탁월함’의 결과로 치부한다. 

심지어 일본 야구선수 마쓰이의 핏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둥, 재미교포 몇 세 누가 미국에서 무엇을 했다 는 둥 하고 나선다. 이것은 정말 지나친 욕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초인적인 한두 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런 초인적 천재는 그냥 하 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숨겨진 재능이 길러지고 드러나도록 돌봐지지 않으면 소용없다. 보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구조 속에서만 진흙 속의 진주도 빛을 발하게 된다(대표적 예가 일본이 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 세계 중심 국가가 되려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을 데려다 세계적 인재로 길 러낼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한다. 영재들을 위한 특별 기관은 그 후에 만들어도 늦지 않다. 

연구소와 교수 증원이 인재 양성 시스템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출발점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부 분야의 특수한 상황 등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견해를 경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이런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전 사회적 위계질서를 어떻게든 타파해 야 하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여기서 논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은 연구소 와 넘쳐나는 교수들로 인해 인재 양성 경로가 다핵화;중층화된다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조금은 완화되지 않 을까 기대도 해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흥행에 성공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상당수가 인터넷 소설과 관계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 가 있다. 영상산업의 핵심 콘텐츠인 ‘스토리’가 바로 인터넷상에서 태어난다는 점 말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 장 높은 가능성과 기대감을 주는 부분이며 또한 우리의 문화적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부에서는 단지 초고속 인터넷망을 깔아 주었을 뿐이다. 영화사를 중심으로 소설 쓰는 초보 작가들을 연결시 켜 준 것도 아니고, 대학 국문학과와 충무로를 산학협동으로 연계한 적도 없다. 

정부에서는 그저 능력 있는 작가들이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최대한 확보해 주는 데 주력하면 된다. 그것을 돈벌이로 연결시키는 것은 민간에서 알아서 할 일들이다. 대신 정부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규칙과 질서만 부여하면 된다. 

이공계 문제를 바라볼 때도 이와 같은 시각이어야 한다. 학자 개개인들, 공학도 개개인들에게 간섭하는 형식이 라면 이공계가 죽는다. 기업들처럼 이들을 돈벌이 아이디어맨으로만 치부하는 이상 이공계의 미래는 없다. 어 떻게 하면 이들이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그 장을 만들어 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이들이 기본적 인 최저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들이 나이가 들었을 때 어떤 사회 봉사의 기회를 줄 것인가 등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서 고급 인력들에게 후한 값을 쳐 줘야 그 성과물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기 업들은 이런 고급 인력을 사용하는 대가를 비싸게 치를 것이고, 그만큼 다른 비용을 절감하면서 품질의 고급화 를 꾀할 수 있다. 

이공계의 위기는 대한민국 학문의 위기의 전면화된 현상이다. 때문에 그 처방 또한 국가의 존망과 결부시켜 마 련해야 한다. 한강 물 정화에 들어가는 돈이 연간 2조~3조원이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를 기약하려면 적어 도 이 정도는 매년 기초학문 육성에 ‘버려야’ 한다. 

1조원이면 기초학문 연구 기관 100개는 운영할 수 있다. 또 다른 1조원으로 연봉 1억원의 교수진 1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나머지 1조원은 기반시설 확충, 중장기 프로젝트 준비, 기존 시설과 인력에 대한 지원 등에 알차 게 쓸 수 있다. 

“목숨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 

이런 대책이 단발성 땜질로 그치지 않으려면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정말 국가적인 ‘ 국책사업’을 벌여 하나의 시스템으로 안정화해야 한다. 정부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예컨대 한 20년 후 에 노벨 과학상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공계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의 무능함과 나태함에 무릎 꿇고 석고대죄할 용의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고위 공무원들의 ‘인식과 마인드의 변화’다. 

글을 맺기 전에 입자물리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예를 하나 소개한다. 미국 시카고 근교에는 ‘테바트론’이라는 세계 최대의 입자가속기가 있다. 그 기계를 처음 만들 때 미 의회 국방위원회에서 (그 때나 지금이나 펜타곤이 여전히 돈줄을 쥐고 있다) 청문회를 했다. 그 청문회에 나온 물리학자가 윌슨이라는, 입자물리학에서 아주 큰 업적을 남긴 매우 유명한 과학자였다. 국방위원들이 물었다. 

“그 가속기가 국토 방위와 무슨 상관이 있지요?” 

윌슨이 대답했다. 

“이 가속기가 조국을 지키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군이 이 가속기를 목숨 걸고 지키게 될 것입니다. ” 

테바트론 때문에 미국은 목숨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초대형 가 속기를 운영하는 데는 최첨단 과학 기술이 모조리 동원된다. 그런 것들을 굳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득이 되는 지 계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거대 가속기의 존재 그리고 거기서 이루어낸 과학적 발견들 - 예컨대 1995년 탑 쿼크(top quark)의 발견-은 도저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학문의 존재 의의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돈 몇 푼 더 벌어 주는 가속기 때문에 미군이 목숨을 걸지는 않을 테니 까. 우리 젊은이들은 과연 대한민국을 목숨 걸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까. 

차마 아인슈타인의 얼굴을 학과 티셔츠에 넣을 수 없었던 우리는 그때 이미 너무 많이 세상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이종필 물리학 박사 - 

1971년 부산 출생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 2001년 동 대학원 박사 학위 2001년 3월~현재 연세대 물리 및 응용물리 사업단에서 두뇌한국 (BK)21 연구원으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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